3.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은 보고나면 기분이 더럽습니다.
그나마 그렇지 않은 영화를 고르라면 박찬욱 감독 스스로가 대상 연령층을 낮췄다고 밝힌 바 있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정도 입니다. 대부분의 영화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기분이 아주 더럽습니다. 이것은 1,2랑도 연결되는 이야기인데...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처럼 극적인 상황에 처하지는 않습니다. 군인중에서도 적은 수가 JSA라는 곳에서 근무를 하고(공동경비구역 JSA), 사업체의 사장이 되고(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유괴와 관련되고(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쓰리 몬스터:컷), 누명을 쓰고(대부분의 영화), 영화 감독을 하고(쓰리 몬스터:컷), 생사가 오갈 정도로 오해를 사고(대부분의 영화)...이런 경우는 실제로 자신에게 일어나기는 힘든일입니다. 그런데, 또 이런 일은 누군가에게는 일어납니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고 드라마를 '즐겁게' 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자신에게 일어난(일어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자신에게 그런 영화같은 일이 일어나면...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영화를 보는 중에, 혹은 보고 나서 '그런 극한 상황에서의 생각'을 강제합니다.
-자, 이런 사람이 이런 시기에 이런 상황에서 이런 끔직한 일을 너에게 했어. 넌 '선량한 시민'일 뿐인데, 죄를 짓지않고 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큰 피해/손해 입히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왔는데(살아 왔다고 믿는데) 말이지. 이런 상황에서 떠오르는 네 마음 속 깊은 곳의 생각은 내가 영화에서 보여준 이야기와 얼마나 다르니?-
라고 묻는 듯 합니다.
4. 박찬욱 감독 영화에서 던져놓는 상황별 선택을 영화별로 몇 개 풀어보면(각본과 감독을 한 영화중 코메디가 아닌 영화만 골라서...솔직히 모든 작품을 다 본 것은 아니니까)
공동경비구역 JSA: 사회 통념상 상종해서는 안될 사람들과 우연에 의해 만나서 친해지게 되고 남에게 밝히지 못할 비밀을 공유하게 되어 버렸고, 그 비밀이 밝혀지면 '자신'은 물론 비밀을 공유한 모든이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면 나의 선택은 영화속 비극과 얼마나 차이가 날까.
복수는 나의 것: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아둥바둥 살아왔고, 그래서 돈도 좀 벌었더니 자식이 유괴당했다. 근데 유괴범이 알고보니 '불쌍한 놈년들'이다. 내가 유괴범과 같은 상황이라면, 혹은 내가 그 유괴당한 자식을 둔 회사 사장이라면 나의 선택은 영화속 비극과 얼마나 차이가 날까.
올드보이: 들켜서는 안되는 비밀을 누군가 눈치챘고, 비밀을 별 생각없이 퍼뜨려 제일 아끼는 누군가가 그 때문에 죽었고, 정작 그 누군가는 지가 잘못했다는 자각조차 없다. 어떤 식으로 억울함을 달랠까? 누군가 자기는 기억도 안나는 과거의 일을 가지고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을 벌여 나를 괴롭혔다. 나는 거기에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것이 '근친상간'과 관련이 있다면? 내가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자식과 원치않는 근친상간을 했다면?...그리고 그것을 나만 알고 있다면?...서로 사랑하게 되었다면?...
쓰리 몬스터, 컷: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써준다고 썼는데, 누군가 기억도 잘 못하는 일로 앙심을 품고 복수를 해 온다면? 복수하려는 사람이 나의 치명적인 약점을 잡고 있다면? 그 약점을 몰라야할 한 사람이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 가운데 한 명에게 알려져 버렸다면? 그 가까운 사람이 알고보니 나에게 숨기고 있는 깜짝 놀랄만한 비밀이 있었다면? 사건이 진행되는 중 자신이 죽이고 싶은 사람을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빌어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다면?
친절한 금자씨: 철없는 시절 있었던 실수로 사건에 휘말리고, 자식이 위험에 쳐해서 짓지도 않은 살인에 대한 죄의 댓가를 받으라고 한다면? 유괴당한 자식들이 죽었고, 개인적으로 범인에게 복수할 기회를 준다고 한다면? 잔인무도한 범죄자인데 법의 테두리에서 받는 죄의 댓가가 너무 작아 보인다면? 누군가 나서서 보수를 바라지도 않고 오히려 손해본 금액을 보전해 주면서 복수에 가담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 비밀이 굉장히 높은 확률로 밝혀지지 않을 수 있다면?
과연 저런 상황들에서...주인공으로서, 혹은 주변 인물로서(특히 피해자로서) 영화속 이야기와 다른 '선량한, 법에 따르는, 도덕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인간은 자신이 가해자일 경우에는 '별 생각 없이' 남에게 해를 끼치고 범죄를 저지르고 남을 이용하고...잊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피해자일 경우에는 '자각하지 못한 채' 과장하고, 집착하고, 잘못된 판단을 하고, 수 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그래서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가해자를 잊지 못하죠.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상황에 따라 주인공과 함께, 혹은 영화속 등장인물과 함께 매 기로에서 같이 선택하도록 강제합니다. 그렇게 연출하고, 그렇게 이야기가 흘러갈 수 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너의 선택은 얼마나 잘났니?'
'넌 영화속 주인공과 등장인물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할 자격이 있는 것 같니?'
영화속 이야기는 분명히 '극한' 상황으로 최악의 최악의 최악의 선택지를 골라 나가는데, 선택하는 사람은 차선의 차선의 차선의 선택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사람도 그 최악의 선택지를 차선의 선택지라고 생각하구요.
인간아, 넌 얼마나 잘나서 선과 악을 얘기하고 정의와 도덕을 얘기하니?
너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둔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 생각에서는
그런 잘난 생각 전에 먼저 떠오른 추악함이 있지 않니?
아마도 있을걸. 그런데 그걸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렴. 인간은 다 그렇단다.
뭐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달까...
그리고, 인정할 수 밖에 없기에 영화를 보고나면 기분이 더럽게 찝찝한거고.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아니라면 그런 기분을 느끼기 힘드니까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거고.
ps1. 쓰다보니 평소 쓰는 문체가 아니네요. 글 쓸 때 웬만해서 높임말로 안쓰는데;;
ps2. 그냥 제 생각일 뿐입니다. 모든 영화평이 그렇듯이. 저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볼 때 마다(코메디 제외) 머리가 아픕니다. 아 ㅅㅂ, 나같아도 저 상황이라면 저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니야, 그런 생각 하면 안되지... 그럼 어떤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해야 하지? 막 이러면서 봅니다-_-;;; 저만 그런가요?
ps3. 영화 평 전문으로 쓰시는 분들 스크린 샷도 적재적소에 넣고 그러는데...성격에 안맞아서 도저히 그런식으로 못쓰겠다능. 시간도 시간이고 귀챠니즘도 귀챠니즘이고.
ps4. 박쥐 개봉 전에 생각 정리겸 쓴 글. 박쥐는 또 얼마나 많은 차선의 차선의 차선으로 포장된 최악의 최악의 최악의 결정을 보여줄지 기대된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