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일단 박쥐는 기대작입니다.
왜냐하면, 박찬욱감독의 영화이기 때문에. 다른 이유? 별로 없습니다. 하나 더 들자면 배우 송강호 정도.


1.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가지고 놀면서 겁나게 후벼 파거든요.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S(사디스트)이면서 M(매조키스트)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S쪽에 기우느냐 M쪽에 기우느냐는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S와 M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로서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스스로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각자 마음 깊숙한 곳에 꾸겨넣고 보통은 꺼내길 주저하거나 평생 꺼내놓지 않는 본능과도 같은 추악함을 영화를 보면서 느낄 수 있게 연출하는데 천부적인 재능 혹은 노력에 의해 갈고 닦은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해자의 S, 피해자의 M(피해자가 되는 것을 좋아한다기 보다는, 나는 피해자니까 이 정도는 해도 용서가 될꺼라고 생각하는 마음. 피해자라서 차라리 다행이다...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는 핑계가 있으니까 뭐 이런거), 피해자의 S(마찬가지로 피해자니까 이 정도는 해도 되!!! 라는 폭력성) 등이 뒤섞이게 만들어 하나로 특정지을 수 없게 하는 능력이랄까.



2. 박찬욱 감독은 '관객'들을 데리고 놉니다.
영화 개봉 전에 마케팅 하는 것만 봐도 보통 수준이 아닙니다. 계획적이고 철저합니다. 관객은 그저 감독을 향해 '떡밥좀 뿌려주셈' 하고 핡핡거릴 수 밖에 없습니다.

영화에서는 일단,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성격에 잠깐이라도 동화되어
'아, 저럴 수 있지...저런 환경에 저런 주변 사람들에 저런 사건을 겪으면 나 같아도 주인공처럼...'
하는 순간에 영화에 낚여버립니다.
그리고 예의 그 연출력과 보는 사람 혼을 빼놓는 미쟝센과 음악과 대사...그리고 극한으로 몰아넣어 잠재력을 끌어낸 배우의 연기로 감독이 원하는대로 요리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가지고 놉니다. 예의 차리지 않습니다. 일단 한 순간이라도 케릭터에 동화가 되고 나면 그렇게 끌려다니며 감독의 장난감이 되어 감독이 하는 이야기에 질질 끌려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종종 주인공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 장치들을 만들어 놓는데, 이 부분들은 상당히 은밀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앗 하는 사이에 동감해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이 경우에는 영화를 보고나서의 찝찝함을 몇 배로 증폭시킵니다. 정작 관객가운데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뭐, 일단 각본이 영화적으로 깊이 생각 안해도 기본 재미는 주니까요.



3.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은 보고나면 기분이 더럽습니다.
그나마 그렇지 않은 영화를 고르라면 박찬욱 감독 스스로가 대상 연령층을 낮췄다고 밝힌 바 있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정도 입니다. 대부분의 영화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기분이 아주 더럽습니다. 이것은 1,2랑도 연결되는 이야기인데...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처럼 극적인 상황에 처하지는 않습니다. 군인중에서도 적은 수가 JSA라는 곳에서 근무를 하고(공동경비구역 JSA), 사업체의 사장이 되고(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유괴와 관련되고(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쓰리 몬스터:컷), 누명을 쓰고(대부분의 영화), 영화 감독을 하고(쓰리 몬스터:컷), 생사가 오갈 정도로 오해를 사고(대부분의 영화)...이런 경우는 실제로 자신에게 일어나기는 힘든일입니다. 그런데, 또 이런 일은 누군가에게는 일어납니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고 드라마를 '즐겁게' 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자신에게 일어난(일어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자신에게 그런 영화같은 일이 일어나면...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영화를 보는 중에, 혹은 보고 나서 '그런 극한 상황에서의 생각'을 강제합니다.
-자, 이런 사람이 이런 시기에 이런 상황에서 이런 끔직한 일을 너에게 했어. 넌 '선량한 시민'일 뿐인데, 죄를 짓지않고 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큰 피해/손해 입히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왔는데(살아 왔다고 믿는데) 말이지. 이런 상황에서 떠오르는 네 마음 속 깊은 곳의 생각은 내가 영화에서 보여준 이야기와 얼마나 다르니?-
라고 묻는 듯 합니다.



4. 박찬욱 감독 영화에서 던져놓는 상황별 선택을 영화별로 몇 개 풀어보면(각본과 감독을 한 영화중 코메디가 아닌 영화만 골라서...솔직히 모든 작품을 다 본 것은 아니니까)

공동경비구역 JSA: 사회 통념상 상종해서는 안될 사람들과 우연에 의해 만나서 친해지게 되고 남에게 밝히지 못할 비밀을 공유하게 되어 버렸고, 그 비밀이 밝혀지면 '자신'은 물론 비밀을 공유한 모든이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면 나의 선택은 영화속 비극과 얼마나 차이가 날까.

복수는 나의 것: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아둥바둥 살아왔고, 그래서 돈도 좀 벌었더니 자식이 유괴당했다. 근데 유괴범이 알고보니 '불쌍한 놈년들'이다. 내가 유괴범과 같은 상황이라면, 혹은 내가 그 유괴당한 자식을 둔 회사 사장이라면 나의 선택은 영화속 비극과 얼마나 차이가 날까.

올드보이: 들켜서는 안되는 비밀을 누군가 눈치챘고, 비밀을 별 생각없이 퍼뜨려 제일 아끼는 누군가가 그 때문에 죽었고, 정작 그 누군가는 지가 잘못했다는 자각조차 없다. 어떤 식으로 억울함을 달랠까? 누군가 자기는 기억도 안나는 과거의 일을 가지고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을 벌여 나를 괴롭혔다. 나는 거기에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것이 '근친상간'과 관련이 있다면? 내가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자식과 원치않는 근친상간을 했다면?...그리고 그것을 나만 알고 있다면?...서로 사랑하게 되었다면?...

쓰리 몬스터, 컷: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써준다고 썼는데, 누군가 기억도 잘 못하는 일로 앙심을 품고 복수를 해 온다면? 복수하려는 사람이 나의 치명적인 약점을 잡고 있다면? 그 약점을 몰라야할 한 사람이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 가운데 한 명에게 알려져 버렸다면? 그 가까운 사람이 알고보니 나에게 숨기고 있는 깜짝 놀랄만한 비밀이 있었다면? 사건이 진행되는 중 자신이 죽이고 싶은 사람을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빌어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다면?

친절한 금자씨: 철없는 시절 있었던 실수로 사건에 휘말리고, 자식이 위험에 쳐해서 짓지도 않은 살인에 대한 죄의 댓가를 받으라고 한다면? 유괴당한 자식들이 죽었고, 개인적으로 범인에게 복수할 기회를 준다고 한다면? 잔인무도한 범죄자인데 법의 테두리에서 받는 죄의 댓가가 너무 작아 보인다면? 누군가 나서서 보수를 바라지도 않고 오히려 손해본 금액을 보전해 주면서 복수에 가담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 비밀이 굉장히 높은 확률로 밝혀지지 않을 수 있다면?

과연 저런 상황들에서...주인공으로서, 혹은 주변 인물로서(특히 피해자로서) 영화속 이야기와 다른 '선량한, 법에 따르는, 도덕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인간은 자신이 가해자일 경우에는 '별 생각 없이' 남에게 해를 끼치고 범죄를 저지르고 남을 이용하고...잊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피해자일 경우에는 '자각하지 못한 채' 과장하고, 집착하고, 잘못된 판단을 하고, 수 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그래서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가해자를 잊지 못하죠.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상황에 따라 주인공과 함께, 혹은 영화속 등장인물과 함께 매 기로에서 같이 선택하도록 강제합니다. 그렇게 연출하고, 그렇게 이야기가 흘러갈 수 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너의 선택은 얼마나 잘났니?'
'넌 영화속 주인공과 등장인물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할 자격이 있는 것 같니?'

영화속 이야기는 분명히 '극한' 상황으로 최악의 최악의 최악의 선택지를 골라 나가는데, 선택하는 사람은 차선의 차선의 차선의 선택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사람도 그 최악의 선택지를 차선의 선택지라고 생각하구요.

인간아, 넌 얼마나 잘나서 선과 악을 얘기하고 정의와 도덕을 얘기하니?

너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둔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 생각에서는
그런 잘난 생각 전에 먼저 떠오른 추악함이 있지 않니?

아마도 있을걸. 그런데 그걸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렴. 인간은 다 그렇단다.

뭐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달까...

그리고, 인정할 수 밖에 없기에 영화를 보고나면 기분이 더럽게 찝찝한거고.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아니라면 그런 기분을 느끼기 힘드니까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거고.



ps1. 쓰다보니 평소 쓰는 문체가 아니네요. 글 쓸 때 웬만해서 높임말로 안쓰는데;;
ps2. 그냥 제 생각일 뿐입니다. 모든 영화평이 그렇듯이. 저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볼 때 마다(코메디 제외) 머리가 아픕니다. 아 ㅅㅂ, 나같아도 저 상황이라면 저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니야, 그런 생각 하면 안되지... 그럼 어떤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해야 하지? 막 이러면서 봅니다-_-;;; 저만 그런가요?
ps3. 영화 평 전문으로 쓰시는 분들 스크린 샷도 적재적소에 넣고 그러는데...성격에 안맞아서 도저히 그런식으로 못쓰겠다능. 시간도 시간이고 귀챠니즘도 귀챠니즘이고.
ps4. 박쥐 개봉 전에 생각 정리겸 쓴 글. 박쥐는 또 얼마나 많은 차선의 차선의 차선으로 포장된 최악의 최악의 최악의 결정을 보여줄지 기대된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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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글은 안 씁, 아니 못 씁니다. 읽고 '이런 생각하는 놈도 있구나. 뭔가 좀 이상하지만 그럴듯해' 정도가 원하는 바입니다. 우호댓글 환영. 비판댓글 환영. 비난댓글 삭제. 관련 트랙백 환영(답방 100%). 추천은 땡큐. 링크 권장. 저작권은 지키려고 '매우' 노력함. UCC/CCL 콘텐츠 포함하지만 인용 및 유머 수준으로 사용. 뒷통수치는 고소고발 재수없음. 본 글은 마하반야에게 저작권 있습니다만 비영리를 전제로 상식적인 인용/발췌는 OK입니다

  1. 머니야 머니야 2009/04/26 17:50 답글수정삭제

    요즘 간간 들려오는 박쥐의 평들은...그닥 좋은영화이다에 무게가 안실리는것 같아요.
    함 봐야 쓰겠죠..ㅋㅋ
    저는 성격이 좀 이상해서 그런지..
    이친구 작품을 보면.. 오히려 유쾌해 진다는...-.-

    • mahabanya 2009/04/26 20:03 수정삭제

      블랙코메디를 즐긴다면 나름 유쾌하게 볼 수도 있지요. ㅋㅋ
      영화에서 은근히 유머코드가 있는지라.

      평들을 보면 결국 '호불호'가 갈릴 영화다.

      뭐, 보고 판단할 일이죠.

  2. 무량수 2009/04/27 17:13 답글수정삭제

    하긴.. 저도 이냥반 영화를 보면, 왠지 모르게 찝찝함 지니게 되더군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아주 괜찮거나 아니면 아주 이상하거나... 뭐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도 이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일단 영화를 봐야 뭐라 말할 꺼리가 생기겠네요.ㅋㅋ

  3. jef 2009/04/30 15:58 답글수정삭제

    그렇다면 박찬욱 감독은 무도덕적 (amoral) 인 사람인걸까요? :)

  4. jjj 2009/05/02 00:58 답글수정삭제

    난 싫다... 흥행뒤에 더더욱 자극적으로만 찍는다고 생각이 드니까...
    눈요기꺼리로만 만드는 영화.. 보고나면 나또한 찝찝해지는...

    • mahabanya 2009/05/02 12:01 수정삭제

      싫으면 안보면 그만;;;
      영화는 잘만들었구만요. 그리고 만들고 나니 흥행도 되었을뿐 흥행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아니죠. 흥행생각하면 영화 그렇게 복잡다단하게 만들필요 없음둥.

  5. [박쥐] 칸 영화제서 심사위원상 수상 !

    Tracked from 엔피자의 영화리뷰전문블로그 - 기필코 이것만큼은 ! 2009/05/25 03:12

    독일 칸에서 낭보가 도착했습니다. 박쥐의 박찬욱 감독님이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입니다. 박찬욱 감독님은 "제가 아는 것이라곤 창작의 즐거움뿐이다. 첫 영화가 실패한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영화를 못 찍었는데 세번째 영화를 찍고 나서부터는 영화를 찍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언제나 행복했다. 영화의 마지막 단계가 칸영화제인 것 같다. 형제나 다름 없는 정다운 친구이자 최상의 동료인 배우 송강호씨와 이 영광을 함께 나누고 싶다" 라는 수상소감을 남기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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