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대학원에서 이런 저런 논문, 기술문서, 중간/결과 보고서, 제안서, 특허, 발표자료 등을 만들었다.
뭐, 이쪽 분야에서 공부를 하다보면 심심하면 하는 일이 문서 만들기다보니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부담 자체는 크지 않은 편이다. 문제는, 어느 정도 틀이 있고, 양식/서식이 있는 글들을 쓰다보면 이게 글쓰기 무지 싫어진다는 것.

그냥 블로그에 뻘글이라도 남길 때에는 별 부담 없이 긴 글을 작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말을 지어가는 것', 그리고 그 안에 내 생각의 흐름을 남에게 잘 보여주는 것은 매우 많은 열량을 소모하는 일인지라 한 번 하고 나면 녹초가 되곤 한다. 그리고...그렇게 애써서 '이정도면 남들도 알아 먹겠지' 싶은 글을 남들이 읽고 '뭔 소리여 이게...' 하면...특히 그 글을 읽어야만 하는 대상이 '도저히 이해가 안가' 하면 겉으로 내색은 잘 안하지만 무지하게 좌절하고 실망하고 원망하고 그런다.

글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스타일이 있어서, 어떤 사람은 주어부를 무지하게 길게 쓰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문장을 조각조각 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괄호와 인용구를 생각의 흐름대로 넣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두괄식을 좋아하고, 누구는 일반적인 이야기에서 구체적인 이야기로 몰아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주 작은 이야기를 엄청나게 키우기도 한다.

글쓴이랑 스타일이 안맞으면 글을 읽기가 꽤나 거북하고 진도가 안나간다.
해리포터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데, 번역된 책도, 그렇다고 원서를 봐도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한 페이지 읽기가 고역이다. 그리고 결국 읽기를 포기했다-_-/ 글이 가진 재미와는 좀 다른 이야기. 문체도 영향을 미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

저널에 낼 논문을 쓰고 후배와 교수님께 보냈더니
후배는 '도저히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하고
교수님은 '이거 좀 많이 고쳐야 겠다'고 한다.

나름 공을 들인다고 인트로덕션을 3번은 다시 썼는데, 다 아는 이야기니까 논리가 정연하고 문장 구성도 완벽은 아니지만 읽을 만 하고 이해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들이 읽을 때에는 그럴리가 없지;;;;;;

글을 '잘 모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읽을 수 있게 쓰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논문을 수정한다고 교수님이랑 1:1로(지도교수가 아니라 지도교수님의 후배, 나한테는 교수님이라기보다는 아는 선배 형같은 느낌의 교수님...뭐 학번도 별 차이 안나긴 한다. 교수님이랑 같은 학번인 선배랑 수업도 같이 들었으니)
12시간을 밤을 새워서 더블칼럼 9페이지 정도 되는 논문을 8페이지로 줄였고, 피같고 살같은 문장들이 다 잘려나가고 다시 봉합되고 새로 만들어 붙었다. 그리고도 또 꼬박 9시간을 다시 토론하고 리뷰했다.
나는 당연한데, 교수님은 이해를 못하시니 이해를 못하게 쓴 내 잘못이 크다.
그래도 억울해서 이 문장은 이런 저런 맥락에서 나온거라고 설명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고 나면 문장이 슬쩍 바뀐다. 문단도 슬쩍 바뀐다. 단어야 뭐...
그렇게 바꾸면, 또 나는 이게 말이 좀 안되는 이야기같고, 거짓말같고, 리뷰어를 속이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또 이건 이런 의미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할 수 밖에 없다.

근데...영어다보니 설명한 그대로의 영어가 안나온다OTL
그러면 말을 풀어서 돌려서 설명해야 한다.
그러면 말이 구차해지고, 중언부언이 되고, 길어지고, 읽다보면 자꾸 핵심을 놓치고

그래도 그런 토론과정을 거쳐서 밀고 당기다 합의를 찾은 문장과 문단으로 구성된 녀석은...처음에 비하면 좀 그럴듯 해 보이고, 잘생겼고, 보기 편하다.

글은 참 이상한게, 쓰면서는 '이 정도면 뭐, 잘 썼지' 싶다.
그리고 다 쓰고 읽어보면 '뭐 이런 거지 발싸개같은게 내 머리에서...' 라며 좌절한다.
시간이 좀 지나고나면 '어라, 꽤 그럴듯 하게 쓴 것 같은데' 한다.
같은 글을 다시 읽어도 독후감은 때와 목적과 장소에 따라 '뭐, 이만하면'에서 'ㅆㅂ&^^$#@**&)*&(#ㅎ%ㅛ로$ㄸ' 를 왔다갔다 한다.

글을 좀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좀 있다.

뭐, 소설같은 것이나 그에 준하는 글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그냥 '내 생각과 논리'를 오해 없이 남들에게 전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읽기만 하면, 마치 글쓴이인 내가 예전에 한 번 썼던 글을 다시 읽는 것 처럼 그냥 막 읽는이의 머리속에 들어가서 자리하는 글.

어렵다. 글쓰기는. 그래서. 쓴다.
이리 저리 쓰다보면, 뭐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_-;;;
(하지만 쓸 때 마다 고민을 안하면 발전은 거의 없거나 더딘 것 같다. 만약, 매일 최근처럼 글을 쓰고, 읽고, 고치고, 토론하고, 다시 쓰고 하는 과정을 1년 정도 한다면........... 아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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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글은 안 씁, 아니 못 씁니다. 읽고 '이런 생각하는 놈도 있구나. 뭔가 좀 이상하지만 그럴듯해' 정도가 원하는 바입니다. 우호댓글 환영. 비판댓글 환영. 비난댓글 삭제. 관련 트랙백 환영(답방 100%). 추천은 땡큐. 링크 권장. 저작권은 지키려고 '매우' 노력함. UCC/CCL 콘텐츠 포함하지만 인용 및 유머 수준으로 사용. 뒷통수치는 고소고발 재수없음. 본 글은 마하반야에게 저작권 있습니다만 비영리를 전제로 상식적인 인용/발췌는 OK입니다

  1. ginu 2009/04/16 13:05 답글수정삭제

    조리있게 글쓰기가 참 어렵습니다. 평생 발전의 기미가 없어 보여요. -ㅅ-;;;

    • mahabanya 2009/04/17 04:18 수정삭제

      궁시렁님 정도 궁시렁 대시면 뭐...
      확실히 Technical writing은 연습하고 신경 쓸 수록 조금씩 나아지는 느낌이 있는데, 어느 순간 몸에 안맞는 옷을 입은 것 처럼 답답해 질 때가 있어서OTL

  2. cielo 2009/04/16 15:45 답글수정삭제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부러워요. 글을 발로 쓰는 저로서는 참...(_ _;;

  3. jerry331 2009/04/16 17:28 답글수정삭제

    아.. 논문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픕니다.. 잘읽고 갑니다..

  4. 초하(初夏) 2009/04/18 16:57 답글수정삭제

    지난 연말에 처음 뵌 것 같은데, 요즘 안 보인다 싶었습니다.
    안부라도 전해주시지... 엮은 글이 궁금해 들러 꼼꼼히 읽고 갑니다. ^(^ ㅎㅎ

    고민하고 노력하다 보면, 나아지지 않을까요...
    저도 이사를 몇 번 했고, 처음 블로그를 개설할 때보다는 조금은 나아진 자신의 모습을 느끼니까요...
    뭐 물론 만족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관련 책들도 많이 참고하고 메모도 꾸준히 하고, 글 쓰고 또 고치고... 그러다 보면...

    주말이면 왜 더 바빠지는 걸까요?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 mahabanya 2009/04/18 17:44 수정삭제

      사실, 초하님 글은 구독해 놓고 읽고는 있는데 그냥 '잘 읽었습니다' 라는 댓글은 좀 지양하고 있는지라 댓글을 잘 안남기게 되네요;;; 종종 들렀다는 흔적을 남기겠습니다^^;;

  5. AKI 2009/04/18 17:04 답글수정삭제

    역시 교수님들이 쓰는 영어는 우리 학생들이 쓰는 영어랑 많이 다른 것 같더군요.
    무슨 얘기냐 하면, 교수님들은 정말 남들 이해하기 쉽고 간단한 표현으로 다들 설명하시는데,
    저희는 뭔가 어설프고, 쓰고 나면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이 된다는.. @_@

    한 달 정도 지나서 다시 읽으면 내가 대체 뭔 소리를 쓴건가 싶고,
    많이 틀린게 보이더라구요..

    그러니까, 사실 제출기한 6개월전에 미리 작업을 해두고, 한 달에 한 번 씩 수정해가면 되는건지도요 ㅋㅋ

    • mahabanya 2009/04/18 17:47 수정삭제

      그 정도로 느긋한 학회나 저널이 있을리가;;;
      과제 하면서 시간나는대로 정리해 놨다가 마감일 1~2달 전에 아웃라인 잡아서 그림/실험결과 배치하고 적당한 분량 배분해서 써 놓고, 적어도 2~3주 전에는 인트로덕션부터 전체 이야기가 되도록 써 놓은 다음 생각 날 때 마다 수정하고, 내용 줄이고...뭐 이런 과정을 거치면 나름 괜찮은데...이게 뭐 쉬운일은 아니지;;;

  6. Inuit 2009/04/19 14:05 답글수정삭제

    시간지나서 보면, 그런 혹독한 과정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저도 석사시절에 논문, 프리젠테이션 등에 대해 많은 경험을 쌓고 회사에 가게 되었지요.

    어쨌든, 고생 많으셨어요. ^_^

  7. 고무풍선기린 2009/04/23 10:44 답글수정삭제

    Inuit blog에서 트랙백 타고 왔습니다.

    몇 년째 논문과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버거워하는 제 모습을
    글을 읽으면서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저는 무럭무럭 자라면 좋으련만, 기대와는 달리
    눈꼽만치만 자라서 그 속에서 절망과 희망을
    오가곤 한답니다.

    조만간 논문 작성의 달인이 되실 것 같습니다. ^^

  8. 대학원생 2009/04/25 17:17 답글수정삭제

    지금 논문쓰다가 너무 힘들어서 저랑 비슷한 처지의 사람도 있나?하는 마음에 인터넷 검색해서 글을 읽네요.
    지금 인문대학 석사논문 쓰는데요.
    다 포기하고 졸업이고 뭐고 안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어요. 아마도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겠죠.
    심리학 공부하다가 철할 쪽 공부한것이 후회될 정도로 너무 힘들어요 ㅠ

    • mahabanya 2009/04/26 20:04 수정삭제

      정상이십니다.
      주위에 석사/박사 논문 준비하는 사람은 다 힘들어 합니다. 학회나 저널 논문하고는 또 다른 압박감이죠.

  9. 글쓰기 생각쓰기

    Tracked from Inuit Blogged 2009/04/19 14:03

    산나님이 2008년 Best 5로 꼽았던 책입니다. 저도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지라 사게 되었습니다. William Zinsser 읽는 그 느낌이 참 좋아, 야금야금 아껴 읽었습니다. (원제) On writing well: the classic guide to writing nonfiction Four principles 진서씨의 글쓰기 원칙은 네가지입니다. 명료함 (clarity): 명료함은 최대의 미덕이자, 최소의 예의입니다. 퓰리처의 원칙도 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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