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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가 낳은 공포는 두 가지의 길을 걷게 한다. 하나는 공포를 뛰어넘을 수 있는 존재를 믿어 의지해버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포의 원인을 찾아가 없애는 것이다. 전자가 초월자인 신에게의 의탁이라 하면 후자는 냉철한 이성과 논리의 승부이다. 또한 전자가 기독교적인 신앙적 문제해결이라 하면 후자는 그리스의 합리주의적 문제해결이다. 웃음은 인간을 공포에서 해방시킨다. 공포에서 해방된 인간은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은 신을 믿지 않는다. 수도원의 수도사 헤르헤는 이렇게 생각했다. 엄격한 규율로 웃음을 금지시키고 ‘웃음은 예술이며 식자(識者)들의 마음이 열리는 세상의 문이다.'라는 내용을 다룬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시학》을 세상의 눈으로부터 감춘다. 사서에서 이러한 내용을 본 사람들을 제거하기 위해 책장에 발라놓은 독으로 책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을 죽인다. 괴 사건들로부터 사건의 해결을 부탁받은 윌리엄은 제자 앗소와 함께 수도원에서 날카로운 관찰력과 추리력, 논리와 이성적 판단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잡아간다. 그 와중에도 살인 사건은 일어나고, 수도원의 사람들은 그것을 악마의 소행으로 단정해 버린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도사들의 비밀이 하나 둘 드러나고, 윌리엄은 그런 것들을 놓치지 않는다. 결국 사서 안에서 밀실을 찾아낸 윌리엄은 지금까지의 생각이 맞았음을 알고 기뻐하지만 이단논쟁에 휘말린다. 인간의 판단이 신의 이름을 빌어 독선과 편견으로 흘러가는 것이 광기처럼 보일 정도로 배경 묘사는 암울하다. 엄숙하다 못해 칙칙하기까지 한 수도원과 권위적인 위계질서는 숨이 막힌다. 독선과 편견으로 마녀재판을 했던 교황측 조사관의 죽음과 진실을 감추려했던 헤르헤의 죽음, 그리고 두려움 없이 그것을 밝혀낸 윌리엄의 성과를 볼 때 그리스의 합리주의가 승리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거기다 마녀재판으로 죽을 뻔한 여자와 앗소의 사랑은 중세의 엄숙주의를 비웃기까지 하는 듯하다. 결국 사건의 발단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고, 범인은 악마나 마녀가 아니라 인간이었으며, 사건을 해결한 것도 신의 계시가 아니라 인간이었다. 하지만 수도원이 그 문제를 인간의 힘에서 떠난 것이라고 본 시점에서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신이 윌리엄으로 하여금 모든 사건을 해결하게 했을 수도 있다. 독선과 오만에 빠진 인간들을 벌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무지에 의한 공포가 사고를 가로막았으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은 윌리엄은 결국 사건을 해결하였다. 중세에 다른 모든 사상을 배척하고 어렸을 때부터 세뇌당하다 시피 하면서 살던 사람이 그동안 믿어왔던 것들을 포기하는 것은 죽기보다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설사 포기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을 공공연히 밝히고 다니는 것은 위험하다. 그런 경직된 사회 속에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유는 제한되며 거부된다. 차라리 자신의 인식범위를 넘어서는 모든 문제를 신의 문제로 돌리는 것이 더욱 편한 문제해결 방법이었을지 모른다. 신의 대리자라 불리는 사람까지 공식적으로 있는데 개인의 고민은 그들을 통해서 해결하면 된다. 지금에 와서 상식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중세가 비상식적으로 비춰지는 것은 지식의 독점과 상징화 과정에서 나타난 오만과 독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성직자나 귀족이 아닌 일반 사람들보다 신의 말씀을 더 많이 보고 접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가르치려 들고, 자신들의 판단이 틀렸을 거라는 것을 생각하지도 반성하지도 않고, 그것이 서로서로 공고히 다져지면서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사유를 가능하게 한 것일지 모른다. 비록 소설이고 영화이긴 하지만 유서 깊은 베네딕트 수도원이 성경에 위배되는 사상들을 사서에 봉인해놓은 것처럼 합리적인 사고, 혹은 성경과 맥을 같이하지 않는 가치관을 이단으로 몰아 고문하고 죽이고 그러면서 드러나는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고 정당화했던 역사가 있었다. 신의 이름을 내건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많은 문명을 파괴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그러고도 아무런 죄의식을 갖지 않도록 할 수 있는지를 역사 속에서 봤다면, 장미의 이름의 윌리엄처럼 침착하고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판단하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할 부분이 신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하다. 열린 사고가 필요하고 이타적인 마음이 필요하다. 권위에 도전하고 그 도전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지 않고 믿음만을 강조하고 모든 문제를 믿음이 부족한 데서 찾는 종교는 그 본질이 흐려질 수 있는 것이다. 장미의 이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은 신을 믿지 않는다’ 였다. 신을 믿게 하기위해 여러 가지 공포심을 심었다는 식으로도 해석되는 이 말은 ‘죽음’이라는 현상에 무지한 인간에게 공포심을 심어 신을 믿게 했다는 식으로도 해석되어 의미심장하다. 종교의식이 웃음 없이 경건하게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라는 점에서도 이것을 증명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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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 마고를 남성편력이 심한 한 여자의 사랑이야기 정도로 알고 있었다. 지금의 가치관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귀족들의 문란함이 충격과 자극으로 다가왔던 여왕 마고였지만 역사적 배경은 종교의 자유가 부분적이나마 간신히 허락되기 전까지의 상황을 신교도 학살사건을 중심으로 마고의 사랑이야기에 담아내고 있었다.
우유부단한 프랑스의 왕 샤를9세를 대신하여 실질적인 섭정을 하고 있는 캐서린은 딸을 구교도와 신교도 사이의 화해의 상징으로 나바르 공국의 앙리와 정략결혼을 시킨다. 구교도인 딸 마고는 정략결혼에 대해 못마땅해 하지만 어머니의 뜻을 거스를 힘은 없다. 결혼축제를 위해서 파리에 온 신교도들은 축제기간 도살당하다시피 학살당한다. 앙리는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수많은 신교도들이 죽었다. 자신들의 사상과 다르면 인정하지 않고, 이해하려 하지 않으며, 일말의 타협도 하지 않는 시대이다.
심약한 샤를의 목숨을 구해준 앙리는 나름의 야망이 있는 남자였다. 마고 또한 결혼식 당시와는 달리 그런 앙리에게 약간의 호감을 가지게 되고, 나중에는 그를 적극적으로 도와 살리려한다. 고양이 앞의 쥐처럼 구교도의 세력 안에 갇혀버린 앙리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마고의 간청대로 카톨릭으로 개종했다. 그 전에도 자신의 신념을 종교 때문에 포기한 예가 많이 있지만, 앙리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눈가림 개종을 했다는 것이 특이할만한 점이었다.
캐서린은 여러 명의 아들이 있었지만 모두 일찍 죽었다. 심약한 샤를 9세가 일찍 사망하자 폴란드에 보낸 아들 앙리3세를 왕위에 앉혔지만 왕의 재목이 아니었다. 앙리의 무리한 정책은 주위권력이 등을 돌리게 하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살해당한다.
종교전쟁 와중에 개종까지 하며 굴욕적이게 살아남은 앙리는 결국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여 프랑스의 왕이 되었고, 마고는 왕비가 되었다. 앙리가 왕좌에 오르며 카톨릭으로 개종은 했지만 신앙심까지 버리지는 않았고,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나바르공국의 위그노에게 낭트칙령을 내림으로써 부분적이나마 예배의 자유를 허용하였다. 자신의 뜻이 옳은 길이라고 믿고 굽히지 않고 달리고 부딪혔던 그 당시 사람들과는 달리 앙리는 자신의 뜻을 탄력있고 유연성 있게 조정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그 당시로써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결과를 얻어내었다.
남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얘기를 들어보려 하지도 않고 귀를 막아버리는 시대. 하지만 앙리4세와 같은 사람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관용이 싹트고 서로 다른 사상에 대한 이해와 타협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그 연속된 작업이 완성되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 시대와 다른 시대에 살며, 사소해 보이는 문제로 몇 천, 몇 만 명을 죽일 수 있었던 그 시대를 비판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현재도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서로 다른 문명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극단으로 치닫는 중동지역의 얽혀있는 이해관계,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동서양의 문화를 비롯해서 작게는 선거 때만 되면 불거져 나오는 각 지역별 다툼 등, 과거와는 다르게 더 많이 상대에게 열려있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신과 다른 사상을 적으로 간주해버리는 사고방식은 여전하다. 아니면 이제 적이라는 개념이 과거와는 좀 다르게 쓰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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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부스도 많은 탐험가, 과학자가 그렇듯이 기존의 질서나 당연시되던 가치관에 반대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배가 지평선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관찰하고 지구가 둥글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콜럼부스는 세계의 끝이라 불리던 서쪽바다를 돌아서 인도를 찾아가겠다고 다짐하고 7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린다.
당시의 유럽은 가톨릭이 가치관 전반에 영향을 주던 시대였고, 성경의 자의적인 해석이 사실로 받아들여지던 때였다. 인도로 가는 새로운 길을 찾겠다는 콜롬부스의 주장은 이해관계, 즉 황금과 새로운 상권, 향신료를 약속하고 나서야 에스파냐의 도움을 받아 추진되었다. 거기에 콜롬부스가 신념에 의해서건 종교계의 반대를 무마시키기 위해서건 내걸었던 또 하나의 조건은 가톨릭을 미지의 원주민에게 전파하여 개화하겠다는 것이었다.
가톨릭을 믿지 않는 다는 사실 하나로 독자적인 문명을 미개문명이라 폄하했던 많은 유럽인들은 신대륙의 발견 후 신을 빙자한 경제권 수탈을 일삼게 된다. 영화에서 콜롬부스는 이상주의자로 비춰지지만, 그 이외의 사람들은 이미 그곳에 몇 백, 몇 천 년 전부터 살고 있었을지 모르는 원주민을 자신들이 믿고 있는 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서, 그리고 자신들이 갖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우월의식을 갖는다. 자신들의 무지를 ‘신의 이름’과 ‘신의 뜻’으로 덮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인물들은 죄의식조차 갖지 않는다. 성경에 나오는 ‘원수를 사랑하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미개인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이었고, 자신들의 동료들의 죽음에 복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들의 입장에서 정당방위는 야만인 것이다.
무지에 의한 몰이해는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장미의 이름에서도 살인사건의 실체에 무지했던 신부들은 그것을 악마의 소행이라고 치부하여 현실을 도피하고 진실에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당시의 유럽인들(현대를 사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겠지만)은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현상을 신이나 악마의 이름을 빌어 설명하려했다. 얼마나 간단한가.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은 신이 원래 그렇게 만들어놓은 것이고, 악마가 장난을 치는 것이다. 진실에 다가가려는 많은 시도나 노력들은 그런 공포심을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고유의 문명과 문화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여유가 없었던 당시의 유럽은 부의 축적을 위해 모든 상황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해석하려 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들을 천국으로 이끌기 위해서라며 자신들의 신을 믿도록 강요하는 것이었고 따르지 않을 경우 신의 이름으로 처단하는 것이다. 전투 중 그들의 정당방위는 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자신들의 생각을 재확인하는 수단이 되었다. 복수가 있었고, 파괴가 있었고, 몰락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종속되어갔다. 그리고 수탈당했다. 더 많은 황금과 더 많은 새로운 것을 원하던 유럽의 귀족들은 신의 말씀 전파를 앞세워 선교사를 보내고, 그들을 개종시키는 한 편 경제적 침탈을 계속했다.
그들이 원주민의 문화를 이해할 노력이 처음부터 없었음은 영화에서도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원주민이 그들의 전설에 따라 하얀 사람들을 신으로 극진히 대접하고, 그들의 언어를 배워 그들을 이해하려 했을 때, 콜롬부스일행을 비롯한 그 이후의 정복자들도 그들의 언어를 배워 그들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콜롬부스일행이 위험에 빠졌을 때 원주민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자 돌아왔던 말 “당신도 우리의 말을 배우는 것이 어떤가”.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데 가장 최우선이 되는 것은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조차 배울 생각이 없었던 콜롬부스 일행은 결국 그들과 가까워질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에서 여전히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유럽과 아메리카의 사상은 동양의 문화를 동양문화 자체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가치관으로 걸러서 보는 것으로 다른 의미의 몰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이라 불리는 이러한 사고방식, 체계는 자신들에게 없는 것을 신비주의적으로 해석하고, 확대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작금의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나 지금까지 있었던 수많은 문명충돌은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만이 옳다는 아집에서 비롯된 것들이며 거기에 반드시 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따라다닌 말은 ‘신의 이름으로’였다.
우리들도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반미주의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게 하는 점이 분명히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