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트위터의 타임라인을 훑어보거나 페이스북이나 버즈에 올라오는 글이나 댓글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좀 답답한 느낌이다. 답답할 이유가 사실 없는데, 나름 오피니언 리더라는
사람들이
종이책은 영원히 존속될 것이고 아날로그 감수성은 영원할 것이라는 얘기를 하는데...뭔가
핀트가
나간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오늘은 간단하게 이와 관련한
생각을
두서없이 적어보고 싶다. 결론이 조금 슬플지도, 희망적일지도 모르겠다. 그 판단은
각자의
몫.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기준을 조금 틀어보자.
언제나 그렇듯 용어의 정의가 사고의 폭을 결정한다.
종이책은 아날로그인가?
전자책은 디지탈인가?
손목시계는 아날로그인가?
유선전화는 아날로그인가?
필름카메라는 아날로그인가?
디지탈 카메라는 디지탈인가?
CD는 아날로그인가?
USB 메모리는 디지탈인가?
이 문제가 쉽지 않다.
진공관 앰프나 LP는 아날로그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있다. 출력 방식 자체가 전형적인 아날로그 방식이고 거기다 손에 잡히는 물건이다.
그러면, 디지탈 손목시계는 셀룰러망을 통한 핸드폰 시게와 비교할 때 아날로그인가 디지탈인가?
CD는 MP3나 비손실 FLAC파일과 비교할 때 아날로그인가 디지탈인가?
아이폰 카메라와 비교하여 DSLR은 아날로그인가 디지탈인가?
아날로그와 디지탈을 나누는 기준은 거기에 저장되는 정보가 아날로그로 저장되느냐 디지탈로 저장되느냐로 구분하기 쉽다. 이렇게 나누면 아날로그냐 디지탈이냐를 구분하는 것은 상당히 명료해지는 듯 보인다. 그런데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면 큰 맥락을 하나 놓치게 된다.
과거에 LP판은 녹음 되는 순간의 잡음까지 파형에 담아넣을 수 있었다. 필름 카메라도 마찬가지이다. 필름에 감광되는 광자 하나의 영향까지 오롯이 담아낸다. 과거의 디지탈 기술로는 이것을 흉내낼 수 없었다. 인쇄기나 타자기의 활자가 살짝 닳아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글자가 찍혀있는 종이책을 현대의 디지탈 기술이 어찌 흉내내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디지탈 기술은 한없이 아날로그 기술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게 무슨 소리냐하면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디지털의 분해능이 아날로그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설사 필름카메라가 광자 단위의 영향을 감광지에 담아낸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 LP가 녹음 순간의 미세한 잡음을 파형에 새겨넣는다 해도, 그리고 그것이 재생될 때 요철이 마모되면서 독특한 음색을 낸다고 해도, 디지탈 파일을 변형하여 아날로그 느낌을 첨가한 파일을 재생하면것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재생된 것인지 디지탈 방식으로 재생된 것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점점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초기에 MP3가 범람했을 때, CD의 웨이브 파일을 mp3로 변환한 것은 음악이 아니라고 폄훼했던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디지탈이 아날로그 음악을 담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사람들이 과연 비손실 압축 파일이 나와서 CD의 웨이브 파일을 변환한 파일을 보고도 같은 주장을 할 수 있을까?
캐논에서 35mm 표준 필름에 비해 감도가 5배 높은 CCD를 만들었다고 한다. 필카의 아날로그를 얘기했던 사람들이 현재의 기술을 보고도 필름 카메라는 디지탈 카메라와 비교할 수 없는 성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10년 전이라면 그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받아들여졌다.
지금은?
10년 후에는?
이와는 별도로 조금 다른 관점에서 얘기를 해 보겠다.
타임라인에 자주 등장하는 얘기가 이북 관련된 얘기라 이 부분을 예로 들어 설명하겠다.
책을 처음 접하는 아이가 종이책이 아닌 아이패드의 아이북스와 아마존 킨들을 먼저 봤다. 수십 권, 수백 권의 책을 하나의 장치에서 넘겨보고, 뒤집어 보고, 돌려보고, 문질러보고, 흔들어본다. 소리도 나오고 동영상도 나오고 색도 칠하고 반응도 한다. 글씨를 쓸 수 있게 되면 거기에 메모도 하고 낙서도 하고 다른 사람이 메모한 것도 보고, 읽고 싶은 책을 스토어에서 찾아 클릭 몇 번에 다운받아 본다.
이 아이가 20살, 30살이 되었을 때 이 아이에게 '책'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종이책은 그냥 부모님 세대에서 사용했던 '다른 형태'의 무엇일 뿐이라고 느끼지 않을까?
약 2000년 전에 종이를 발명하기 전까지 책이라는 것은 죽간을 의미했다. 대나무를 쪼개어 붓과 먹으로 대나무 결을 따라 세로로 글을 써서 그것을 순서대로 엮어 둘둘 말아놓은 것이다. 冊이라는 한자가 이런 죽간의 모습을 본딴 글자이다. 혹은 파피루스나 양피지에 적힌 글이 둘둘 말려있는 것을 의미했다.
종이가 발명되고 난 후에 종이책을 보고 자란 세대가 죽간을 책으로 인식할까 서책을 책으로 인식할까?
마찬가지로 e북을 보고 자란 세대가 서책을 책으로 인식할까 e북을 책으로 인식할까?
담기는 콘텐츠는 '글'이다. '그림'이다.
이게 디지탈 시대를 맞이하여 '소리'와 '동영상'으로 확대되었을 뿐이다.
담는 그릇은 대나무나 헝겊이나 가죽에서 종이로, 그리고 액정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종이가 너무도 훌륭해서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와 잠시 착각하고 있을 뿐이지 종이책만 책이라는 인식 자체는 사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단순한 생각이다.
책은, 글자가 모인 문장, 문장이 모인 문단, 문단이 모인 글이 담긴 어떤 것이다.
형태로 제한되는 어떤 것이 아니란 말이다.
죽간, 혹은 파피루스가 책의 형태였던 시절에 책이란 얼마나 사치스럽고 고귀한 것이었겠는가.
비단이나 가죽에 글을 쓰던 시절엔 어땠는가.
그것이 닥나무나 마의 섬유질을 풀어헤쳐 얇게 떠서 사용하게 되었을 때, 인류의 문명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말이다. 그것을 나무의 섬유질로 확대하여 공장에서 대량생산을 하게된 시대에는 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말이다. 사람이 일일이 글자를 한 자 한 자 필사하다가 활자인쇄를 쓰게 되었을 때 필사한 책이 아니면책이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었다면 '지금' 그런 사람을 어찌 생각할 것인가 말이다.
우리는 지금 종이책 한 권도 안 되는 무게에 수백, 수천, 아니 수만권의 책을 담아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시대에 산다. 창고에 책을 잔뜩 쌓아놓고 팔리길 바라지 않아도, 독자가 결제할 때마다 디지탈 '복사'라는 방법으로 너무도 빠르고 간단하게 지구 반대편까지 책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보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난 이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아날로그의 감수성을 얘기하면서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거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전 인류가 말 그대로 '평등'하게 지식을 접하고, 지혜를 꿈꿀 수 있는 시대가 올 수 있다면 종이책의 '형태' 따위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한다.
블로거가 글을 쓸 때, 이익을 바라고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자신의 얘기를 전하고 싶어하는 생물인지라 본능에 충실하게 주어진 도구에 맞춰 글을 쓸 뿐이다. 글의 형태가 아니라면 음악으로, 또는 그림으로, 음성이나 영상으로 전할 뿐이다.
조금 확대하면 유튜브의 동영상도 사실 '책'이고, 아이튠즈의 게임도 사실 '책'이나 다름없다.
누군가의 머리속에 있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모든 창작활동이 '책'이나 다름없다.
이북이 등장하면 출판업계가 힘들거라고 한다.
혹자는 이북은 이북의 길을 가고 종이책은 독자노선을 걸을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중간지에 해당하는 기간이 길어야 20년을 넘기지 못할거라고 본다.
지금 미국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이 접할 책은 종이책이 아니라 이북일 것이고, 이 아이들이 자라서 느끼는 '아날로그 느낌'의 책은 아이패드나 킨들같은 것이 될테니 말이다. 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의 아날로그 책이란 지금 우리가 생각하듯 '종이로 된 책'이 아니라 액정화면에 손가락으로 조작하는 한 손에 잡히는 크기의 납작한 그 무엇일 것이기 때문이다.
20년 뒤에는 새로운 책이 등장할 것이다.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형태가 바뀔 뿐이다. 엄밀히 따지면 그렇게 큰 변화도 아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글을 읽는다.
그림을 보고, 사진을 보고, 음악을 듣고, 움직임을 본다.
디지탈 카메라의 성능이 조악할 때에는 필름카메라가 없어지지 않을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도 '느낌' 때문에 필카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마하반야가 보기에 조금 안 된 말이지만, 그들은 그냥 남들과 다르다는 '프리미엄'이나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때가 많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필카냐 디카냐를 따지지 않는다.
그들은 빛을 따지고, 구도를 따지고, 시간을 따진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종이책이냐 이북이냐를 따지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편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으면 된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LP냐 CDP냐 아이팟이냐를 따지지 않는다.
가슴을 울리는 멜로디와 감성과 공명하는 비트, 그리고 누군가가 수 년, 수십 년을 연습한 목소리와 악기의 조화를 즐길 뿐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DVD냐 블루레이냐 아이맥스냐를 따지지 않는다.
감독의 연출과 배우의 열연과 스토리텔링과 다양한 스텝들이 고생해서 만든 화면과 소리를 제대로 느끼고 싶을 뿐이다.
사람마다 아날로그의 기준은 다 다르다.
나에게 아날로그란
워크맨, 더블데크 카세트, CD, 삐삐, 브라운관 TV, 3.5인치 디스켓, 볼마우스, 35메가픽셀짜리 웹카메라, PC통신 같은 것이다.
LP나 진공관 앰프, 필름카메라는 우리 부모님 세대의 아날로그일 뿐이고.
지금의 10대가 30대나 40대가 되었을 때의 아날로그는
아이폰, 노트북, 대형 LCD티비, 킨들, IPTV, 네이버나 구글/페이스북 같은 것이다.
이제 막 세상을 접한 아이들이 30대가 되었을 때의 아날로그는?